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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신왕영혼육건강 2026. 1. 27. 14:37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신 왕예수께서는 세상의 권력 앞에 서 계셨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모습이었고, 재판을 받는 피고의 자리였지요. 그런데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놀랍도록 담대했습니다.“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이 말씀은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패배자의 자기 위로도 아니었지요.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셨습니다.그리고 곧이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한 문장은요, 신앙의 모든 것을 가르는 기준처럼 들립니다.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개념이 아닙니다. 어떤 철학 체계도 아니고, 종교적 교리 목록도 아닙니다. 진리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지금도 살아서 말씀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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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롯이 지체하매…” 멸망 직전, 머뭇거림이 남긴 경고영혼육건강 2026. 1. 27. 07:34
우유부단|“롯이 지체하매…” 멸망 직전, 머뭇거림이 남긴 경고창세기 19장 12~22절 묵상 · 결단을 미루는 마음을 깨우는 이야기입니다.키워드: 우유부단 · 롯이 지체하매 · 소돔과 고모라 · 신앙 결단1) 동틀 무렵,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울 때였을 겁니다. 소돔의 골목은 조용했지만, 하늘의 시간은 이미 마감 직전이었지요. 그때 천사들이 롯에게 말합니다.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 사위와 자녀와 친족을 모두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요.말씀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요, 사람 마음이 늘 그렇게 선명하진 않죠. 롯의 사위들은 경고를 농담처럼 여겼습니다. 심판의 메시지가 웃음거리로 들릴 만큼, 그들의 삶은 이미 소돔의 공기와 분위기에 깊이 젖어 있었던 셈입니다.말씀이 가볍게 들릴 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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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는 어른들의 행실을 본다영혼육건강 2026. 1. 26. 07:34
다음세대는 어른들의 행실을 본다― 창세기 19:1~11, 소돔과 고모라 멸망 직전의 가장 무서운 장면우리는 흔히 다음세대를 이야기할 때, 아이들의 문제부터 떠올립니다. “요즘 아이들이 왜 이럴까?”, “세상이 너무 험해졌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젓곤 합니다.그런데 성경은 질문을 거꾸로 던집니다. “그 아이들이 누구를 보고 자랐느냐?”창세기 19장은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다음세대에 대한 경고입니다.천사를 맞이한 롯, 그러나 이미 무너진 도시두 천사가 소돔에 들어왔을 때, 롯은 그들을 보고 급히 일어나 절하며 말합니다.“내 주여, 종의 집으로 돌이켜 들어와 주무소서.” (창 19:2)이 장면만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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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말고 기다리라영혼육건강 2026. 1. 25. 08:26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성령이 임하실 때, 신앙은 비로소 시작됩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손에 못 자국을 만졌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으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귀로 들었습니다.이미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이제 나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그런데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심을 멈추게 하고,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제자리에 앉혀 놓습니다.왜일까요? 이미 예수님을 믿었는데요. 이미 부활을 보았는데요.그런데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이 장면에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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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피로 속량 받은 자의 확신영혼육건강 2026. 1. 24. 11:10
예수님의 피로 속량받은 자의 확신― 좁은 문과 넓은 길,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중심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속량받아 죄 사함을 받은 자이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가 되셨고, 지금도 내 안에 영원토록 사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이 고백은 흔들리기 위한 말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중심이에요. 그런데요, 요즘 유튜브를 켜면 마음을 흔드는 간증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1) “교회 열심히 다녔는데 지옥에 갔다”는 말 앞에서어느 영상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층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성가대 봉사도 했지만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갔다는 고백 말이지요.그 이야기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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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영혼육건강 2026. 1. 24. 08:17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아픔을 안고 잠시 멈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떠난 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곤 하죠. “믿음이 약해서 나간 거야.” “시험 들어서 떠난 거지.” 그런데요,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한 번 더 찌를 수도 있습니다.조금만 가까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면이 달라져요. 그분들은 믿음이 없어서 떠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진심으로 섬겼기에 더 크게 다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예배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고요, 기도 제목을 품고 눈물로 버틴 날도 있었을 겁니다. 교회를 ‘내 집’처럼 아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하던 분들도 많았지요. 그러니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는 얕지 않아요. 아주 깊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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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들게 하는 자들이 나의 주위에 꼭 있다영혼육건강 2026. 1. 23. 19:57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내 주위에 꼭 있어야 하는 이유관계가 아플 때, 마음은 흔들리는데요. 그런데 그 흔들림 속에 성장의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솔직히 말하면요, 우리 인생에는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죠.어디를 가든, 어떤 모임에 들어가든, 꼭 한 사람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이 등장하곤 합니다.처음엔 “그냥 성격이 안 맞나?” 하고 넘기는데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왜 하필 내 주변에는 꼭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지?”피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은데도 묘하게 또 마주치게 되죠.그런데요,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그 사람은 ‘내 삶을 망치러 온 존재’가 아니라내 마음을 다듬는 과정으로 들어온 사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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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영혼육건강 2026. 1. 23. 07:59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창세기 17장, 생명이 시작된 순간아브람이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사람의 나이로 보면 아흔아홉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입니다. 앞을 계획하기보다는,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이지요.아브람에게도 희망의 조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식은 없었고, 약속은 오래 지연되었으며, 삶의 가능성은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창 17:1)소망이 있을 때가 아니라,아무 소망이 없어 보일 때,사람의 눈으로는 끝이라고 느껴질 때,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이 장면은 아브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