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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는데,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영혼육건강 2026. 1. 18. 11:34728x90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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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는데,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사실은 죽어 있을 수 있습니다.
숨은 쉬고, 하루를 보내고, 밥을 먹고 잠을 자지만요.
성경은 그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요.처음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을 때, 조금 낯설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왔는데요?’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그런데요, 말씀은 우리의 행동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태를 말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말이지요.
① 죽어 있었던 인생의 자리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심장이 멈춘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상태,
은혜와 단절된 삶,
그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왜 사는지 모른 채 살았고요,
열심히 달렸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고,
밤이 되면 이유 없는 허전함이 찾아왔을 겁니다.그때 우리는 몰랐습니다.
“아, 내가 지금 죽어 있었구나.”
② 그런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말씀은 여기서 방향을 바꿉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집니다.“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고…”
여기서 꼭 붙잡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살리셨고’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죽은 사람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잖아요.
손을 들 힘도, 도움을 요청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그 자리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③ 이유는 단 하나, 긍휼과 사랑
왜 살리셨을까요?
우리가 착해서요?
신앙심이 깊어서요?
아닙니다.“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이게 이유의 전부입니다.
설명도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은혜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비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④ 시니어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 ‘살리심’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나…”
“내 인생은 다 지나온 것 같은데…”그런데요, 복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살리심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늦음’이 없어요.오히려 인생의 후반부에서 이 말씀이 더 깊이 박힙니다.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게,
정말 내 힘이었을까?”아니요.
살려 두셨기 때문에 오늘도 숨 쉬고 있는 겁니다.
⑤ 오늘의 고백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이지요.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으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사람입니다.이 고백 하나면 충분합니다.
과거가 어떠했는지보다,
지금 누가 나를 붙들고 계신지가 더 중요하니까요.오늘 하루도 은혜로 삽니다.
내가 살아서가 아니라,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이 글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HTML 형식으로 작성되어, 시니어 독자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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