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붙잡지 아니하면 — 아하스 왕 이야기
오늘 본문은 역대하 28장 1~4절인데요, “붙잡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하스가 정작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붙잡을 때 삶이 어디로 흐르는지 보여줍니다.
1) 이름은 ‘붙잡는 자’였지만, 손은 다른 곳을 향했어요
히브리어로 아하스(Ahaz)는 “붙잡다, 움켜쥐다”라는 뉘앙스를 지닌 이름입니다. 원래라면 하나님을 굳게 붙드는 사람이라는 축복의 의미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담담히 기록합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았고, 이방의 길을 따라 부어 만든 우상을 세웠다고요.
더 아픈 기록도 있죠. 자녀를 불사르는 제사까지 행했다는 구절이 마음을 베어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위기의 순간, 그는 하나님 대신 눈앞의 힘과 즉각적인 해법처럼 보이는 것을 택했을 겁니다. 우리도 비슷할 때가 있지요?
2) 하나님을 놓치면, 결국 다른 무언가를 꽉 쥐게 됩니다
사람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붙잡고 살아가요. 누군가는 불안을, 누군가는 성공을, 또 다른 이는 관계를 꼭 움켜쥐죠. 그런데 그것들은 계절처럼 변합니다. 영원히 버팀목이 되어주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에요.
아하스는 신앙 대신 정치동맹과 이방제의를 붙잡았습니다. 당장은 실용적이었을지 몰라도, 결과는 더 깊은 혼란이었죠.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마음이 쌓이면, 나중은 더 큰 무게로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요, 한 번쯤?
3) 왜 붙잡아야 할 분은 오직 한 분일까요?
우리가 붙들 때 무너지지 않는 기준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분은 신실하시고 선하시며 변함없으신 분이에요. 세상 힘은 빛날 때가 있고 꺼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감정의 과열이 아니라 성품을 신뢰하는 선택이에요.
특히 고난 앞에서 이 사실이 빛을 발합니다. 위기는 우리를 붙잡고 있는 분을 드러내거든요. 하나님을 붙잡은 자는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아요. 반면 다른 것을 붙잡은 손은 시들해지고, 끝내 공허만 남길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순간, 그분께 손을 내밀어 보시겠어요?
4) 아하스의 길과 우리의 오늘: 거울처럼 비추어 보아요
아하스의 선택은 한 왕의 개인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흐름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예배가 흐려질 때, 우상이 또렷해지고, 말씀이 희미해질수록, 불안은 더 선명해지죠. 그래서 신앙의 회복은 붙잡는 대상의 교체에서 시작됩니다.
- 예배의 회복 —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작은 기도를 우선순위로 둬보세요. “주님, 오늘도 붙잡아 주소서.” 간단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고백입니다.
- 말씀의 자리 — 하루 한 절이라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귀로 들리면 마음이 따라와요.
- 관계의 정직 — 인정욕구를 붙잡던 손을 조금 놓고, 겸손을 택해 보아요. 마음이 가볍게 숨을 쉽니다.
작은 전환이 내일의 큰 발자국이 됩니다. 오늘 한 걸음이면 충분해요, 시작이 중요하니까요.
5) ‘붙잡기’의 영성: 손을 펴고, 다시 잡는 연습입니다
신앙은 완벽한 사람들이 걷는 고속도로가 아니에요. 넘어졌다 일어나는 사람들이 서로 부축하며 걷는 순례길입니다. 손을 펴고, 하나님께 다시 붙잡히는 연습을 반복해요. 체면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니까요.
- 고백 — “주님, 제가 엉뚱한 것을 붙잡았네요.”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 길이 열려요.
- 전환 — 붙들던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짧아도 괜찮습니다.
- 실천 — 오늘 하루의 작고 선한 선택 한 가지. 그 사소함이 내일의 방향을 바꿉니다.
혹시 마음 한구석이 마르고 있다면, 붙잡는 대상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보죠.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을 거예요.
말씀으로 정리해요 (요약)
본문 — 역대하 28:1~4. 아하스는 ‘붙잡는 자’라는 이름과 달리,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붙잡았습니다. 심지어 자녀를 불사르는 제사까지 행했지요.
교훈 — 사람은 무언가를 반드시 붙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져요. 붙잡을 유일한 반석은 하나님이십니다.
적용 — 오늘 작게라도 기도·말씀·정직으로 손을 내밀어 보아요. 우리가 붙잡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굳게 붙들어 주십니다.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주님, 제가 두려움과 조급함을 붙잡던 손을 풉니다. 이제 주님의 손을 붙잡겠습니다. 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붙들어 주세요. 오늘 이 작은 고백을 새로운 시작으로 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