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지휘자
할렐루야. 성소에서, 궁창에서, 그리고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박자를 잡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요.
어느 날은요, 제 마음이 마치 어긋난 합주 같았어요. 기쁜 일도 있는데 이상하게 기쁨이 이어지지 않고, 작은 걱정 하나가 리듬을 깨뜨리더라고요. “왜 이렇게 뒤죽박죽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죠. 그런데요, 그때 문득 떠오른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50편이었어요.
저는 늘 인생을 혼자 연주하는 것처럼 느꼈는데, 말씀은 조용히 알려 주더군요. “아니에요. 너의 삶에는 지휘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흐름과 타이밍을 정확히 붙잡고 계시는 분이죠.
“할렐루야,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할지어다.”
성소에서 시작되어, 궁창을 울리는 찬양
시편 150편의 시작은 아주 선명합니다. 찬양은 방 안에서만 울리는 노래가 아니라, 성소에서 시작되어 궁창까지 번져 가는 하늘의 울림이지요. 그러니까요, 오늘 내 작은 숨소리도 그 큰 찬양의 강물에 합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날은 기도가 한숨처럼 흘러나오기도 하죠. “주님, 저 지금 버겁습니다…” 이렇게 말하다가도 “이게 찬양이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휘자이신 주님은요, 그 미세한 떨림까지도 악보의 일부로 받아 주십니다. 참 신기하지요?
각기 다른 악기, 하나로 모이는 뜻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소고와 춤과 현악과 퉁소와 제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여기 나오는 악기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소리가 다르고, 울림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지요. 나팔은 선포하고요, 비파는 위로를 전합니다. 수금은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고, 소고는 마치 심장처럼 두근거리며 박자를 세워 주는 것 같아요. 춤은 말로 다 못한 감사를 몸으로 고백하죠.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담대히 외치고, 누군가는 조용히 뒤에서 버티며,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로 찬양하고, 어떤 분은 웃음으로 찬송하죠. 다 달라 보여도요, 지휘자이신 주님이 손짓하시면 서로 다른 인생이 한 곡으로 맞춰집니다.
중요한 건 “누가 더 크게 소리 내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짓을 보고 있느냐”일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내 박자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거든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조건 없는 초대
시편 150편의 마지막은요, 너무 따뜻해서 마음이 멈칫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여기에는 자격 조건이 없어요.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없고, 상황이 좋아야 한다는 제한도 없지요. 숨을 쉬고 있다면, 그 자체가 찬양의 이유가 된다고 말씀하는 듯합니다.
숨을 쉰다는 건 아직 끝난 곡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러니 오늘도 이렇게 말해 봅니다. “주님, 제가 박자를 놓치면 다시 맞춰 주세요.” “제가 소리를 잃어버리면 다시 노래하게 해 주세요.” 이런 고백도 찬양이 될까요? 네, 될 겁니다.
오늘 내 삶의 지휘대 앞에서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떤 소리로 울리고 있나요? 기쁨의 나팔인가요, 아니면 조용한 현악일까요? 혹시 쉼표처럼 길게 이어지는 침묵의 구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요,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지휘대에 서 계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해도,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그분의 손짓은 멈춘 적이 없지요.
그러니 오늘,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짧게라도, 작게라도, 다시 한번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해 봅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바로 당신과 저를 향한 초대니까요.
오늘의 작은 실천
1) 숨을 고르고 “할렐루야”를 천천히 한 번 고백해요.
2) 내 삶의 악기(감정/시간/관계)를 주님께 맡긴다고 말해요.
3)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포해요: “주님은 지휘자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