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영혼육건강 2026. 2. 6. 09:47728x90반응형
<!doctype html>
📖 요한복음 3:1~8 묵상 · 니고데모 이야기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요밤에 찾아온 지도자 니고데모, 그리고 “거듭남”을 말씀하신 예수님.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겁니다.
#거듭남 #물과성령 #성령의바람 #예수그리스도1) 밤에 찾아온 사람, 니고데모의 마음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동시에 유대인의 지도자였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종교 지도자였고, 율법과 전통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던 분이죠. 그런데 그런 그가 밤에 예수님께 옵니다.
왜 하필 밤이었을까요?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을 수도 있고, 마음속 질문이 너무 커서 조용히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겉모습의 확신” 뒤에 숨은 영혼의 갈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맞는 말 같죠. 그런데 예수님은 표적의 감탄보다 더 깊은 곳, 더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한복음 3장(요 3:3의 핵심)이 순간 니고데모는 멈칫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는 아직 육적인 계산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2)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네요
예수님은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요. 여기서 핵심은 “정보를 더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 요한복음 3:6육으로 태어난 우리는 육의 한계를 가집니다. 열심, 노력, 종교적 성취가 있어도 그 자체로는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 요한복음 3:8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나뭇잎이 흔들리고 공기가 달라지는 걸 보면 “지금 바람이 불고 있구나” 알게 되죠. 성령도 이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 안에 들어오시면 생각의 방향과 마음의 중심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3) 그때는 몰랐지만, 니고데모는 결국 고백하게 됩니다
솔직히 그 밤에 니고데모는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물과 성령”이라는 말씀도, “거듭남”이라는 선언도 그의 지식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겠죠. 그런데요, 복음서는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9:39에서 니고데모는 다시 등장하는데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과 침향 약 30kg을 가져옵니다.
그 양은 아무에게나 쓰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시에 그 정도의 향품은 왕에게 드리는 장례 예물로 알려져 있죠. 제자들은 두려워 흩어졌는데, 니고데모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님 곁으로 나아갑니다. 말로 크게 외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한 고백이었습니다.
- ✔ 변화의 증거 밤에 조심스럽게 찾아오던 사람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예우합니다.
- ✔ 믿음의 이동 표적을 “관찰”하던 눈이, 십자가를 “고백”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겁니다.
4) 그래서 “물과 성령”은 결국 누구를 가리킬까요?
물과 성령은 각각 의미가 있어요. 물은 정결케 하심, 씻어 주심을 떠올리게 하고, 성령은 새 생명, 하나님의 숨결을 생각나게 하죠. 그런데 이것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결국 한 분을 향해 모이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 오늘의 고백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안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