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 삶, 믿음으로 다시 서요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 삶, 믿음으로 다시 서요
스가랴 12:5를 붙들고, 포위된 날에도 믿음으로 숨 쉬어 보자고요.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더 곤경에 빠지는 순간이 있죠. “왜 내가 더 막막할까요?”라고 묻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혀 줍니다.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하리라”(슥 12:5)입니다. 결국 우리의 약함과 시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짜 힘을 배우는 학교예요.
포인트 — 믿음을 지키다가 어려움이 깊어질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새 힘을 공급받는 통로가 되는 때입니다.
-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1절) — 시작을 아시는 분이 끝도 붙드시죠.
- 그날, 에워싸임 속에서도(2절) — 포위는 패배가 아니라 준비일 거예요.
- “내가, 내가” 그리고 “그 날에, 그 날에” — 하나님 주권의 반복 강조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1절)
시작은 언제나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서 출발해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작고 연약해 보여도, 나를 지으신 분의 손은 결코 작지 않아요. “처음과 나중”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대면, 혼란 속에서도 길이 다시 보일 겁니다. 우리가 무너질 듯 흔들릴 때에도 주님은 근원에서부터 새 힘을 부어 주시거든요.
그래서 믿음은 “내가 해내겠다”보다 “하나님이 하신다”에 더 가까워요. 시선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집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는 작은 순종이 오늘을 지나는 견고한 발걸음이 되겠죠.
2) 에워싸임을 당할지라도 (2절)
믿음을 붙잡았는데도 삶이 사방에서 좁혀올 때가 있지요. 경제적인 압박, 관계의 오해, 영적 공격까지 겹치면 숨이 턱 막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해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겠다고요(슥 12장 문맥). 포위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는 무대 전환일 수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의 고백을 이어가기입니다. 입술이 상황을 따라가면 마음이 금세 무너져요. 반대로 말씀을 붙들고 말하면 영혼이 일어납니다. 둘째, 작은 순종을 계속하기예요. 하루치 순종이 길게 보면 가장 빠른 길이 되곤 하죠. 포위의 날에도 순종의 등불을 끄지 않으면, 새벽은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을 거예요.
3) “내가, 내가” 그리고 “그 날에, 그 날에”
스가랴서는 독특한 반복을 들려줍니다. “내가, 내가”, 그리고 “그 날에, 그 날에”라는 문구가 자주 나오는데요, 이는 하나님의 주권 선언이에요. 결과를 바꾸는 주어가 “나”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못 박는 표현이죠. 그러니 우리는 불안에 묶이지 말고 주도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면 됩니다.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고 고백했는데요, 약함이 사라져서 강한 게 아니라 약함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눈앞의 수치는 패배가 아니고,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어요.
스가랴 12:5 — “유다의 두령들(방백)이 마음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들의 힘을 얻었다 하리라”입니다.
오늘 적용 3가지
- 고백을 바꾸세요 — 상황 보고서 대신 말씀 고백서를 읽자고요.
- 작은 순종을 계속해요 — 느려 보여도 하루치 순종이 길을 냅니다.
- 주권을 하나님께 — “내가”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고 믿습니다.
짧은 기도 — 주님, 에워싸인 날에도 주권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오늘 힘을 얻게 하소서. “그 날에”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결국 믿음의 여정은 내 힘으로 완성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내가, 내가” 하시며 이루시는 역사로 채워질 겁니다. 오늘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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