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마음이 유난히 거칠어지던 아침이었는데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속이 상하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도 괜히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럴 때 있잖아요? “나는 왜 이렇게 사랑이 없지…” 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날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 조용히 말씀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이 제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냥 좋은 말이 아니라, 마치 지금의 나를 정확히 아시는 분이 건네시는 음성 같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저는 이렇게 되물었어요. “주님, 지금 제 마음이 이렇게 메마른데… 어떻게 사랑하라는 건가요?” 사랑이란 게 감정이면 더더욱 불가능해 보이죠. 하지만 말씀은 방향을 바꿔 주었습니다. 사랑의 시작점이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로요.
사랑은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아요
우리는 흔히 사랑을 “내가 느끼는 감정”으로 생각하죠. 기분이 좋을 때는 쉽게 흘러나오지만, 상처를 받으면 금세 식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의 사랑은 종종 조건과 한계를 드러내곤 해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는 표시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내가 먼저 잘해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사랑을 배워 가는 겁니다. 그러니 사랑은 “내가 만들어 내는 성품”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흘려보내시는 생명에 더 가깝습니다.
사랑할 때 드러나는 ‘소속’의 표지
어떤 날은 믿음이 입술에서만 맴도는 것 같아요. 고백은 거룩한데 삶은 삐걱거릴 때가 있거든요. 그럴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통해 확인하게 하십니다. “너는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고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사랑은 자격증이 아니라 정체성의 열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어요. “완벽하게 사랑해야만 하나님께 속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족하니까, 매일 사랑을 배우는 중이죠.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서 “그래도 사랑해 보자”는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그 마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용서가 어려울 때도요, 그냥 지나가고 싶은 순간도 있지요. 하지만 그때 한 번 더 참아 주는 선택, 한 마디를 더 따뜻하게 바꿔 말하는 용기, 그 작아 보이는 사랑이 사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표식이 됩니다.
사랑은 ‘말’보다 먼저 걷는 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어르신이 계신데요. 늘 조용하신 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겨울, 몸이 불편해 교회에 잘 못 나오시던 새가족 한 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고, 시간이 없고, “누가 가겠지” 하며 지나가던 그때, 그 어르신이 작은 보온병과 귤 한 봉지를 들고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화려한 말은 없었대요. “춥지요? 따뜻한 차 좀 드세요.” 그 한마디였는데, 그 새가족이 그날 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사랑이었네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찔리기도 하고, 동시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랑은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오늘의 작은 걸음으로 시작될 수 있구나 싶었거든요. 우리가 사랑할 때, 세상은 “착한 사람”을 본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속한 사람”을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사랑해 볼까요?
-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기예요.
- 누군가의 마음을 읽기 위해 조금 더 천천히 듣기입니다.
- 그 사람을 바꾸기보다, 내가 먼저 따뜻한 방향으로 한 발 움직여 보는 거죠.
사랑은 감정이 흔들려도 선택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흘러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오늘도 “내겐 사랑이 부족해요”라고 느끼시나요? 그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 솔직히 가져가면 되거든요. 사랑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공급받는 은혜입니다.
“주님, 내가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함으로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