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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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요
밤에 찾아온 지도자 니고데모, 그리고 “거듭남”을 말씀하신 예수님.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겁니다.
1) 밤에 찾아온 사람, 니고데모의 마음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동시에 유대인의 지도자였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종교 지도자였고, 율법과 전통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던 분이죠. 그런데 그런 그가 밤에 예수님께 옵니다.
왜 하필 밤이었을까요?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을 수도 있고, 마음속 질문이 너무 커서 조용히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겉모습의 확신” 뒤에 숨은 영혼의 갈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맞는 말 같죠. 그런데 예수님은 표적의 감탄보다 더 깊은 곳, 더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십니다.
이 순간 니고데모는 멈칫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는 아직 육적인 계산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2)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네요
예수님은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요. 여기서 핵심은 “정보를 더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육으로 태어난 우리는 육의 한계를 가집니다. 열심, 노력, 종교적 성취가 있어도 그 자체로는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요, 나뭇잎이 흔들리고 공기가 달라지는 걸 보면 “지금 바람이 불고 있구나” 알게 되죠. 성령도 이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 안에 들어오시면 생각의 방향과 마음의 중심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3) 그때는 몰랐지만, 니고데모는 결국 고백하게 됩니다
솔직히 그 밤에 니고데모는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물과 성령”이라는 말씀도, “거듭남”이라는 선언도 그의 지식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겠죠. 그런데요, 복음서는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9:39에서 니고데모는 다시 등장하는데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과 침향 약 30kg을 가져옵니다.
그 양은 아무에게나 쓰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시에 그 정도의 향품은 왕에게 드리는 장례 예물로 알려져 있죠. 제자들은 두려워 흩어졌는데, 니고데모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님 곁으로 나아갑니다. 말로 크게 외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한 고백이었습니다.
- ✔ 변화의 증거 밤에 조심스럽게 찾아오던 사람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예우합니다.
- ✔ 믿음의 이동 표적을 “관찰”하던 눈이, 십자가를 “고백”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겁니다.
4) 그래서 “물과 성령”은 결국 누구를 가리킬까요?
물과 성령은 각각 의미가 있어요. 물은 정결케 하심, 씻어 주심을 떠올리게 하고, 성령은 새 생명, 하나님의 숨결을 생각나게 하죠. 그런데 이것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결국 한 분을 향해 모이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