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말고 기다리라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 성령이 임하실 때, 신앙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손에 못 자국을 만졌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으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귀로 들었습니다.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이제 나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심을 멈추게 하고,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제자리에 앉혀 놓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예수님을 믿었는데요. 이미 부활을 보았는데요.
그런데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마주합니다. 신앙은 ‘아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교회를 오래 다닌 것, 봉사를 열심히 한 것, 그 자체가 신앙의 출발선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시작은 언제나 성령이 임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떠나지 말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성령 없이도 종교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 흉내를 낼 수도 있고, 말씀을 인용할 수도 있으며, 열심 있는 신앙인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성령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증명’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을 때까지 말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 말씀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오직’입니다.
경험도 아니고요, 결단도 아니며, 준비가 완벽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 그 다음이 열립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권능을 받으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눈에 띄는 사역을 해야 할 것 같으며, 사람들이 알아보는 존재가 될 것 같다고요.
그런데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권능의 목적은 ‘일을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능력 있는 종교인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의 흔적이 남은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이론이 아니라 태도로, 설명이 아니라 존재로 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 조급하던 사람이 기다릴 수 있게 되고요,
- 자기를 드러내던 사람이 예수를 가리키게 되며,
- 불안하던 사람이 담대해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신앙은 더 이상 무거운 의무가 아닙니다. 버거운 짐도 아니고요.
신앙은 내가 예수를 붙드는 삶이 아니라 예수가 나를 사시는 삶이 됩니다.
혹시 지금 신앙이 버겁게 느껴지시나요? 열심히 하는데도 공허한 느낌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이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무언가 더 하려고 애쓰기 전에,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기 전에, 먼저 멈춰 서서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일거리가 아니라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압니다.
아, 신앙은 내가 버티는 게 아니라 붙들리는 것이었구나.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이후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기다림은 늦음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