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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심, 바벨탑 사건으로 읽는 하나님의 개입

영혼육 건강 2026. 1. 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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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심

창세기 11:1~9|바벨탑 사건으로 읽는 하나님의 개입


성경을 읽다 보면요, 사람이 끝까지 올라가 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마다 하나님은 조용히 내려오시는 장면을 보여 주십니다. 바벨탑 사건은 그 장면이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본문인데요,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의 오늘이 자꾸 겹쳐 보이곤 합니다.

창세기 11장은 이렇게 시작하죠.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 11:1)

원래 언어는 하나였고요, 말도 같았습니다. 그러니 협력도 쉬웠겠지요, 마음만 맞으면 무엇이든 함께 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이 ‘하나 됨’이 문제가 되었을까요?

문제는 언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커진 것이 죄가 된 것도 아니고요. 방향이 틀어졌을 때, ‘하나 됨’은 축복에서 위험으로 변해 버립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연합은요, 쉽게 교만의 공동 프로젝트가 되기 쉽습니다.

1) 시날 평지, 문명이 자신을 믿기 시작한 자리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 머물며 말합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라고요. 성경은 그냥 ‘쌓았다’고만 하지 않고, 재료까지 꼼꼼히 기록해 둡니다.

  • 돌 대신 벽돌
  • 진흙 대신 역청(아스팔트)

이 표현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질서보다, 사람이 만든 기술과 시스템을 더 믿겠다는 고백처럼 들리거든요. “하나님이 없어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라는 선언이, 말없이 마음속에서 자라난 셈이지요. 어쩌면 우리도요, 내 경험·내 계산·내 능력으로 안전을 제조하려고 애쓰는 날이 많지 않나요?

2) 성읍과 탑, 그리고 숨은 목적

그들이 탑을 쌓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 속에 마음이 드러나고, 마음 속에 우상이 드러나지요.

  •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
  • 우리의 이름을 내자”
  • “흩어짐을 면하자

여기서 자꾸 반복되는 단어가 있지요.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뒷전으로 밀립니다. 창세기 1장에서 주신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은요, 그들의 계획 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바벨탑은 예배의 탑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세우는 탑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발전이고 성취인데요, 속으로는 “내가 주인이다”라는 선언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탑은요, 높아질수록 더 위험해지는 법입니다.

3) 여호와께서 내려오사 — 인간의 ‘높음’이 들키는 순간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손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그때, 하나님은 ‘내려오셨다’고요.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창 11:5)

이 문장이 참 묘하게 마음을 찌릅니다. 사람이 “하늘에 닿자”고 쌓았지만, 하나님께는 내려오셔야 보일 정도였다는 뜻이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간 것 같아도,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는 여전히 작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요, 우리가 착각으로 무너지기 전에 현실을 보게 하시려고 내려오시는 겁니다.

4)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 — 심판이면서도 보호인 이유

하나님은 탑을 곧장 무너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그 결과 사람들은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 “벌이다!”라고 단정하기 쉬운데요, 조금만 더 깊이 보면 다른 빛이 보입니다.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교만이 더 커지기 전에, 하나님은 더 큰 파멸을 막기 위해 “흩으심”으로 개입하셨습니다.

혼잡은 무조건 저주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멈추지 못할 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시는 방법일 수 있지요. 우리가 내려놓지 못할 때,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시는 길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곳 이름을 바벨이라 합니다. 뜻은 ‘혼잡’입니다. 그러나 그 혼잡 한가운데에도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5) 오늘 내 마음의 바벨탑을 묻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요,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나요?

  • 하나님 없이도 될 것 같은 안전
  •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이름
  • 흩어질까 두려워 움켜쥔 자리

혹시 그 탑이 너무 높아져서, 기도가 짧아지고 말씀은 멀어지고, 내 마음의 중심이 “우리”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런 때 하나님은요, 때로는 막히게 하시고, 때로는 흩어지게 하시며, 다시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십니다. 그게 바로 ‘내려오심’의 은혜일지 모릅니다.

결론|내려오심은 정죄가 아니라, 돌아오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올라가려 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내려오신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그 내려오심은요, 무너뜨리기 위한 손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개입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고 계십니다. “이제는 누구의 이름을 높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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