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하시는 주님
그래도 사랑하시는 주님
― 창세기 20장, 흔들린 믿음 위에 세워진 언약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창세기 20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흔아홉 살의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지요. 약속은 분명했고, 언약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사라도 이미 들었습니다. “내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사라는 약속의 여인이었고, 이삭은 반드시 태어나야 할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 거류합니다. 그리고 다시, 너무나도 인간적인 선택을 합니다.
“사라는 내 누이입니다.”
사라의 나이는 이미 아흔 살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위협이 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아브라함의 마음은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혹시 나를 죽일까 봐…”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사람의 고백치고는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크면 두려움은 사라질 거라고. 그런데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여전히 흔들릴 수 있다고 말이지요.
약속이 위태로워진 순간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려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사라는 약속의 통로이고, 이삭은 메시아 계보의 시작입니다. 만약 이 일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심각한 위기에 놓였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그냥 두셨을까?”
“왜 미리 막지 않으셨을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신다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비멜렉에게 직접 나타나십니다.
“네가 데려간 여자는 남의 아내다.”
아비멜렉은 무지함을 호소합니다. 자신은 알지 못했고, 정직하게 행동했다고 말이지요.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범죄하지 않게 막았노라.”
이 한 문장이 창세기 20장의 핵심입니다.
👉 아브라함이 사라를 지킨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사라를 지키셨습니다.
약속은 사람의 믿음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린 믿음 위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랑
창세기 20장은 아브라함의 위대함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워했고,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상황은 엉망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실수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두려움보다 큽니다.
사라는 다시 돌아왔고,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으며, 이삭은 예정된 때에 태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미 받은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두려움의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엔 정말 실망하셨을 거야.” “이 정도면 하나님도 포기하시지 않을까.”
하지만 창세기 20장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도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약속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흔들려도 붙드시는 분, 실수해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도 사랑하시는 주님.
창세기 20장은 우리 같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